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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님 컬럼

2022년 02월 4주 담임목사님 칼럼 -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관리자|등록일 : 2022.02.26|조회수 : 13|추천 : 0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포악한 거인이다. 그는 아테네 교외의 언덕에 살면서 길을 지나가는 사람을 상대로 강도질을 일삼았다. 프로크루스테스는 붙잡아온 사람을 침대에 눕히고는 키가 침대보다 크면 발을 잘랐다. 사람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춰 다리를 억지로 잡아 늘였다. 어떤 사람도 키가 침대의 길이에 딱 들어맞을 수는 없었다. 잡혀온 사람 모두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 어차피 죽일 것인데 왜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런 게임의 법칙을 만들었던 것일까요? 아마도 자기 나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는 수시로 변하는 기준을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죽였지만 나름대로는 분명한 기준에 따랐다는 명분에 집착했던 것입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테세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그의 침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그의 침대는 사람들의 자아 속에 남아 여전히 자기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누구라도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러운 자기중심적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몰고 급히 가면서 다른 사람들이 비켜주지 않는다고 성화를 냅니다. 하지만 여유 있게 운전하고 있는데 누가 끼어들면 새치기 한다고 경적을 울립니다. 내 생각과 달라서 기분이 나빠지고 감정이 상하는 일이 학교, 일터, 가정과 삶속에 비일비재 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하나같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기준에 맞춰 상대방을 평가하고, 특별히 그 기준이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적인 기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처럼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요한 사도도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3:16)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순절을 맞이하며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고사하고 먼저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소한 우리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만이라도 없애버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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