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의 중심은 목사가 아니고, 장로도 아니고 권사도 아니다. 지금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이
교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참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시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다. 교회를 가리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신부', '주님의 성전'이라 말하고 있다.
지금 몸 된 교회인 성도가 아픔을 겪고 있다면 그 분이 교회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몸의 중심이 어디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데모크리토스라면 ‘심장, 뇌’라고 대답하고, 에피쿠로스라면 ‘아픈곳’이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의 어느 한 곳이 아프면 모든 신경이 그곳에 집중되고 아픈 것이 치유될 때까지는 몸의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심은 불변의 장소가 아니다. 순간순간 변하는 실체다. 굳어진 마음으로는 그 변화하는 중심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하늘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 어긋남 없이 중심에 잇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웃은 언제나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그의 이웃이 되어주는 자가 그 사람의 이웃이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겠느냐?"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은 '지금 강도 만난 자의 입장'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책임과 상황에 맞딱뜨려 있는 자, 그가 그의 이웃이라는 말씀입니다.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라 아픈 곳이라고 시작하는 박노해 시인의 '나 거기 서 있다'詩가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정의 중심도, 나라의 중심도, 세계의 중심도 아픈 곳이라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건강한 곳이 우리 몸의 중심인줄 알았는데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생기고 보니 아픈 곳이 중심이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문제는 건강할 때는 이러한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나의 중심은 어디인가? 우리의 중심은 어디인가? 교회의 중심은 어디인가?
매주 금요일 저녁9시에 아픔을 격는 이들과 수험생들과 이웃을 위해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