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목회서신』에서 말세에 나타날 현상 가운데 하나로 그 때에는 사람들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디모데후서 3:5) “경건의 모양”이 있다는 것은 경건한 삶을 사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인다는 것이다. “경건의 능력”이라는 말은 경건에는 능력이 있음을 말해 준다. 경건의 능력은 성도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는 것은 그러한 경건의 능력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로 앞 절인 <디모데후서 3:2-4>에 나오는 모습을 하고 사는 것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거부하는 사람들은 “경건을 이익의 방도(수단)”로 여긴다.
(디모데전서 6:5) 그들은 예수님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처럼 위선적인 사람들이다. 바울은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디모데에게 명했다. 그런 사람들을 멀리하라는 말씀이다. 또한 경건은 연단을 요구한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도록 너 자신을 연단하라.”했다.
(디모데전서 4:7) <야고보서 1:27>은 경건을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참된 경건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와 더불어 세상 속에서 성도의 품격과 향기를 발하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공감의 영성을 가지고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참된 경건은 높이가 아니라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다. 깊이가 없는 높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된장찌개의 맛은 깊이 발효된 콩과 땅에서 곰삭은 파의 우러남과 스밈에 있는 것처럼 깊이만큼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음식도 시간이 흐를수록 부패하는 음식이 있고 발효하는 것이 있듯이,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노인이 되는 사람이 있고, 익어가는 사람이 있다. 저물어 가는 사람이 있고, 여물어 가는 사람이 있다. 둘 다 세월을 먹었지만 세월의 내용을 먹어 품격이 있는 어른이 되고, 세월은 먹었지만 내용이 없는 사람은 꼰대가 되어 간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으면 물거품이다. 경건의 모양도 있고 경건의 능력도 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